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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 : 아들 손·발 노릇 20년 위대한 어머니의 기적
글번호: 698
작성자: 시루
작성일: 2004/05/08 오후 12:57:00 (2004/05/08 오후 12:57:00 수정)
조회수: 2701
선천성 근육병 아들 연세대 컴퓨터공학과 입학시킨 이원옥씨


    



지난 4월 30일, 연세대 대강당을 향해 휠체어를 밀고 달려가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를 따라 뛰었더니 대강당 한쪽에 휠체어를 밀어넣고는 “휴~” 하고 이마에 송글송글 맺힌 땀을 닦았다. “11시면 교실 문을 닫아버리거든요. 공대에서 10분 동안 열심히 달려와야 정시에 맞출 수 있어요. 이때면 저도 모르는 괴력이 나와요.”

그녀가 바로 연세대 학생이면 모르는 이가 없다는 이원옥(58)씨다. 전신마비 근육병을 앓고있는 신형진(20ㆍ연세대 컴퓨터과학과 2년)군의 어머니다.

“초등학교에만 입학해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은 매일 감개무량하죠. 1학년 수업 중에 바깥에서 보이는 교실이 있었거든요. 칠판에는 상형문자가 빼곡히 쓰여있고 교수님이 열심히이씨는 “무겁고 두꺼운 컴퓨터 관련 원서를 휠체어 위에 놓고 이동할 때면 왠지 우쭐해진다”며 수줍은 속내를 밝혔다. 생후 6개월 만에 근육병 판정을 받아 생사조차 불투명하던 시절, 그녀는 이 행복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시험 때면 책장 넘겨주며 함께 밤새워



신형진군은 이씨가 38세에 낳은 귀한 아들이었다. 생후 3~4개월까지는 뒤집기도 잘하고 다른 애들과 똑같았다. 하지만 4개월이 지나자 보행기를 잘 타지 못해 그저 발육이 늦는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주변에서 ‘애가 이상하다’며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했다.

“국내 병원에서는 정확한 병명조차 판명되지 않았고 미국 존스홉킨스병원까지 가야했어요. 근육병인데 원인은 알 수 없다, 치료 방법도 없다, 진행성이라서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잔인하게 말하더군요. 아무도 눈에 보이지 않고 세상에 형진이와 저만 보였어요.”

신군의 병명은 ‘척추성 근위축증’. 근육병이란 근육의 힘이 서서히 약해져 신체의 장애를 가져와서 모든 일상생활을 남에게 의지하게 되는 만성적ㆍ진행적 질병이다. 신군의 경우 초등학교 3학년 이후 몸 전체가 마비되어 머리를 1㎜도 움직이지 못하는 악성으로, 늘 누워 지내야 한다. 이씨는 “서너 살 때 겪은 6ㆍ25의 공포를 생각하니 전쟁이 나면 형진이를 업고 부산까지 가야한다는 마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며 “그때부터 ‘절망하지 말자, 되겠지, 되겠지’ 하는 희망을 가졌다”고 말했다.

문제는 학교생활이었다. 이씨는 아들을 일반학교에 보내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서울 대치동에 있는 모 중학교에 입학할 때였다. 이씨는 교장 선생님께 신군의 상황을 적은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며칠 후 교장선생님은 그녀에게 “이런 애가 한 명 들어오면 행정이나 교실 배정 등 복잡해진다. 장애인 학교로 보내라”고 말했다.

“교실을 나오자마자 정말 펑펑 울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장애자와 비장애자가 함께 생활하는 외국의 사례를 설명해가며 교장선생님께 다시 한 번 장문의 편지를 썼어요.”

이씨의 열정에 감동, 결국 학교는 신군의 입학을 허가하고 1층 교실에 배정했다. 신군의 경우는 다행이지만 대개 다른 학부모들이 반대를 하기 때문에 장애인 때문에 1층 교실을 배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저는 형진이가 고등학교까지 다니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어요. 건강만 생각했지 공부는 뒷전이었거든요. 중학교부터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잖아요. 형진이 친구들의 노트를 빌려서 복사해주고 밤마다 공부할 때면 옆에서 책을 일일이 넘겨줬어요. 가래가 생기지 않도록 밤새 10번, 20번씩 뒤척여줘야 하거든요. 같이 밤을 샜죠. 그런데 반에서 10등을 한 거예요.”



감격이었다. 고등학교 때는 반에서 5∼6등을 차지했다. 이원옥씨도 아들과 함께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시험을 볼 때면 복도에 책상을 갖다놓고 그녀가 아들 대신 OMR 카드에 기입을 해야했다. 때문에 새로운 수학기호가 나오면 그녀도 외워야 했다.



“제가 문과 출신이라 보니까 모르는 수학기호가 너무 많았어요. 처음에는 리미트(limit)나 시그마(∑)가 기호인 줄도 모르고 한글로 썼다가 형진이한테 혼나기도 했어요.”









눈으로 움직이는 마우스 이용해 컴퓨터 작동

연세대에 입학하려면 수능 2등급은 되어야 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결석없이 학교에 다니는 일은 계속됐다. 겨울에 눈이라도 내리면 그녀는 아들을 안고 다녔다.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치명적이었지만 엄마의 열정을 막지는 못했다.



“어떤 날은 아침에 눈뜰 때 ‘오늘은 정말 못가겠다’ 싶은 마음도 있지만 결석은 되도록 안해요. 늘 학교에 가기 때문에 저에겐 낮 약속이 아예 없어요. 오히려 형진이가 몸이 아파 학교에 안가면 우울해요. 학교에 와서 앉아있는 게 더 좋아요.”

신군은 현재 대학생활에 대만족이다. 어렸을 때부터 원했던 컴퓨터 공부를 하기 때문이다. 고교 시절 이과 공부가 어려우니까 문과를 택하라고 해도 ‘컴퓨터공학’만을 고집했던 신형진군이었다. 현재 14학점을 듣는데 일주일에 3∼4일은 꼬박 밤을 새야 한다.



“컴퓨터로 프로그래밍을 해서 메일로 보내는 과제가 많아요. 형진이가 프로그래밍 숙제를 하면 저도 옆에서 밤을 새워야 해요. 프로그래밍 하다가 다시 책을 들춰야 하니까요. 애들 아빠가 ‘형진이도 죽고 엄마도 죽겠다’면서 학점을 줄이라고 해도 형진이가 전공 3개를 함께 들어야 도움이 된대요.”

예전에 비하면 그녀의 손길은 많이 준 편이다. 다름아닌 눈으로 하는 마우스 ‘퀵글랜스’ 때문. 눈동자가 커서가 되어 눈을 깜빡거려 인터넷을 하는 것이다. 신군은 이제 영어자판을 한글로 변형시켜 친구들과 채팅을 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한다. 하나에 8000달러(1000만원)나 하는 비싼 제품이다. 하지만 이씨는 “그 전에는 채팅을 할 때도 내가 대신 글자를 찍어줬는데, 퀵글랜스 덕분에 형진이에게도 사생활이 생겼다”며 “너무너무 감사해서 미국 본사에 편지까지 썼다”고 말했다.

친구들은 신군을 ‘신 박사’ 혹은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라고 부른다. 신군에게 “나중에 뭘 할 계획이냐”고 물었더니 “아직 구체적으로 생각하지 않았지만 소프트웨어 개발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씨는 “형진이는 나중에 박사 학위도 받을 것”이라며 거들었다.

“장애인 대학생이 1%도 되지 않는대요. 두려움 때문에 부모들이 시키지 않는 거죠. 형진이는 그나마 아버지를 잘 만나서 휠체어도 사주고 차도 사주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어떻게 해요. 외국은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자원봉사자를 붙여 장애인이 집에서도 배울 수 있도록 해줘요. 우리는 이제야 장애인 의원이 진입, 국회 건물을 고친다고 하니 안타까워요.”(신형진군의 아버지는 ㈜옥시 대표이사 사장인 신현우씨다.)



담당의사들은 “신형진군의 생존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기적’”이라고 말한다. 신군의 키는 160㎝에 몸무게가 24㎏이다. 신군의 경우 가래가 기도를 막아서 호흡이 힘들어지면 금방 목숨이 위태롭다. 때문에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고 지금도 살얼음 위를 걷는 것처럼 늘 불안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들에게 절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네가 군대가는 게 소원이다” “아들인 너를 안 낳았으면 엄마는 쫓겨날 뻔했다”는 등의 말로 아들에게 책임감을 갖도록 강조하고 중요한 존재란 것을 인식시킨다.



“앞으로 직장에도 따라다녀야 할지 모르겠어요. 늘 숨어있다가 소변을 보거나 밥 먹을 때, 형진이가 필요할 때 나와서 지켜줘야죠.”

이원옥씨의 환한 미소가 교정에 은은하게 퍼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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